이발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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토론역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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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 개요2. 역사3. 면허증
3.1. 국가기술자격(기능사)3.2. 국가기술자격(기능장)
4. 시험5. 관련 문서
 
 
 
 
 
 
 
 
 
 
 
 

1. 개요[편집]

 
 
 
 
 
 
 
 
 
 
 
 
이발사(理髮師, barber)란, 일정한 자격을 가지고 남의 머리카락을 자르거나 다듬고 손질하는 일을 직업으로 삼는 사람이다.

한국에서는 공중위생관리법이용사에 해당한다.
 
 
 
 
 
 
 
 
 
 
 
 

2. 역사[편집]

 
 
 
 
 
 
 
 
 
 
 
 
함무라비 법전에는 226~227조에 이발사에 대해 기록되어 있다. 당시 이발사는 노예에게 노예의 표시를 만들거나 자르는 일을 했다.

중세 서양중동에서 이발사는 대개 외과 의사목욕탕 운영을 부업으로 했다.[1][2] 이 당시 이발사 겸 외과의사들은 수많은 일을 도맡아 했는데, 고객의 이발과 면도는 물론이고 환자의 진찰[3], 사혈, 관장[4], 수족의 절단[5]이나 발치 등의 의료행위도 이들의 몫이었다. 가장 수요가 많았던 사혈의 경우, 팔을 특수한 칼로 째서 피를 받는 방법과 거머리를 사용해 피를 빨아내는 방법이 주로 쓰였기 때문에 피를 받아낼 동안 환자가 잡고 있는 놋쇠 봉과 피를 받아내는 그릇, 사혈이 끝나고 상처를 봉합사는 붕대는 이발사 겸 외과의사(barber-surgeon)의 상징이었다. 놋쇠 봉의 위쪽 끝에는 거머리를 잠시 얹어놓기 위한 큼지막한 공이 하나 붙어 있었다.

중세 시대에는 간판이 없었기 때문에 각 가게마다 자신이 판매하는 물건이나 직업을 상징하는 도구를 문 앞에 걸어놓음으로서 이곳이 어떤 가게인가를 홍보했는데, 이발사 겸 외과의사들 또한 피를 받아놓은 그릇을 문 앞에 내놓아 홍보했었다. 그러나 이것이 문제가 되자[6] 대신 상술한 사혈용 봉에 붕대를 감아 가게 앞에 걸어놓게 되었다. 이후 의학의 발달로 이발사와 외과의사가 분리되어 완전히 다른 직업이 된 후에도 이 풍습은 이발소 회전등으로 이어졌다. 실제로 영국 등 유럽 국가들의 이발소 회전등은 붉은색과 흰색으로 구성되어 있으며 회전등의 위는 동그란 구가 달려있고 아랫쪽은 평평한데, 붉은색과 흰색은 당연히 피묻은 붕대[7]를 형상화한 것이며 구형 꼭대기와 평평한 아랫부분은 각각 거머리를 얹어놓는 공과 피를 받는 그릇을 형상화한 것이다.

한편 미국에서도 이를 본뜬 회전등을 이발소에 설치했는데, 미국의 이발사들은 붉은색과 흰색에 파란색을 추가해 성조기와 같은 색조합을 만들어 썼고, 이것이 그대로 한국에도 들어오며 빨강-파랑-하양의 회전등이 이발소의 상징이 되었다. 이발소 회전등의 빨강-파랑-하양이 각각 동맥-정맥-신경이라는 설도 있지만, 이는 근거가 부족하다.[8]

중국과 일본에서는 이발사가 한반도에 비해 훨씬 일찍부터 등장했다. 근세 중국은 변발, 일본은 촌마게라는 앞머리를 빡빡하게 미는 헤어스타일을 하는것이 일반적이었고 이 당시에는 전기면도기와 바리깡이 없던 시절이라 이발을 혼자 하기 힘들었기에 이발사도 일찍 등장했다.

대한민국에서는 1895년 갑오개혁 당시 김홍집 내각에 의해 단발령이 내려진 뒤, 안종호라는 사람이 대한제국 왕실 최초의 이발사가 되었다는 기록이 있다. 이후 직장과 학교, 군대 등에서 단발 혹은 반삭을 규정으로 정착하면서 이발사는 어디가서 굶어죽지 않을 기술직으로 대접을 받았고, 1980년대 초반까지 계속 이어졌고 특히 1970년대 당시의 이발소는 폭발적으로 늘어나는 중고등학교 취학률 및 장발단속으로 최대 호황기를 누렸다. 이 당시에는 베이비붐 세대들이 한창 학교를 다녔던 시절인데다가 대부분의 중고등학교 두발기준이 1cm 이하의 반삭이라 왠만한 남학생들은 최소 2주에 한번은 끝까지 깍아야 했기 때문에 고정수익이 엄청났다. 물론 이 당시에도 모든 이발사가 돈을 벌 수 있게 아니었고, 견습생과 보조들은 급여가 낮았지만 그래도 버티면 큰 돈을 벌 수 있었다. 그래서 이 당시 이발사는 돈 잘버는 부자직업으로 손꼽혔으며 특히 중고등학교 근처에 근무하는 이발사는 어지간한 대기업 사원는 따위로 볼수 있을 정도로 돈을 엄청 벌어들였을 정도였다.[9] 1980년대까지는 이발사들이 이용원을 차리면서 계속 명맥을 이어갔지만 1982년 두발자유화로 두발규정이 완화되자[10] 자신의 미학대로[11] 자르는 무대뽀 영업이 한계를 맞이했고, 퇴폐이발소의 급증으로 인해 수요가 줄어서 한동안 초고령화 직업이기도 했다. 그러다가 2010년대 즈음부터 복고풍의 리젠트, 포마드 컷이 유행하기 시작하면서 복고풍 컷 전문점, 소위 '바버샵'이 급증하면서 이발사도 점점 늘어나는 상황.
 
 
 
 
 
 
 
 
 
 
 
 
 
 
 
 
 
 
 
 
이발사로 일하려면 자격증을 취득하고 자격증 원본, 신분증, 사진 2장, 인감증명서를 각 시, 군, 구청에 제출하고 면허증을 발급받아야 한다.
 
 
 
 
 
 
 
 
 
 
 
 

3.1. 국가기술자격(기능사)[편집]

 
 
 
 
 
 
 
 
 
 
 
 
이 자격의 기능사에 해당하는 자격으로는 이용사가 있다.
 
 
 
 
 
 
 
 
 
 
 
 

3.2. 국가기술자격(기능장)[편집]

 
 
 
 
 
 
 
 
 
 
 
 
이 자격의 기능장에 해당하는 자격으로는 이용장이 있다.
 
 
 
 
 
 
 
 
 
 
 
 

4. 시험[편집]

 
 
 
 
 
 
 
 
 
 
 
 
일반인은 1년에 4회 정기 시험이 있고 필기 면제자 검정이 1회 있다.

필기 종목은 이용이론, 공중보건학, 소독학, 피부학, 공중위생법규 5과목 중 60문제가 출제된다.

실기는 이용작업을 시험보는데 시험 시간은 2시간 10분이다.

2016년부터 과정평가형 자격 교육으로 자격증을 취득할 수 있다.
 
 
 
 
 
 
 
 
 
 
 
 

5. 관련 문서[편집]

 
 
 
 
 
 
 
 
 
 
 
 
[1] 본래는 내과, 외과를 막론하고 의사 역할을 하던 것은 성직자들이었지만, 1163년 성직자가 외과를 맡는 것이 금지되면서 대신 이발사가 맡게 되었다.[2] 아라비안 나이트에서도 '이발사와 염색사'라는 동화가 포함되어 있다. 착한 이발사와 그를 시기하는 못된 염색사의 이야기인데 여기서 이발사는 염색사의 모함으로 먼 나라로 도망쳐온 뒤 새로운 직업으로 목욕탕을 개업하게 된다.[3] 환자의 오줌을 받아 색과 냄새, 맛(!)을 통해 병을 진단하는 방식이 가장 흔했다.[4] 요즘의 관장을 생각하면 안 된다. 항문에 길쭉한 금속 관을 꽂아넣은 후 약을 부어넣고 밀대로 밀어넣는(...) 대단히 원시적인 방법이 사용되었다. 그 당시에는 현대의 관장약마냥 기똥찬 물건이 없었으니 이게 직빵이기는 했다.[5] 심한 골절이나 외상을 입은 경우 당시에는 절단 외에는 방법이 없었다. 물론 지혈이나 소독 등의 개념 또한 없었기에 '치료'를 받고 죽은 사람도 매우 많았다.[6] 피가 썩어 고약한 냄새가 풍길 뿐만 아니라 들짐승들이 피냄새를 맡고 몰려들 수 있다.[7] 당시에는 교차감염이라는 개념 자체가 없었고 직물은 비쌌기 때문에 사용한 붕대는 빨아가며 계속 사용했다.[8] 한편 프랑스 국기로 쓰이는 삼색기는 프랑스 혁명 당시 파리 시민들(적색, 청색)에 의해 포위된 부르봉 왕조(흰색)를 상징하는 것이다.[9] 이러한 사정은 중국, 일본, 대만, 홍콩도 마찬가지였고 북한도 마찬가지로 21세기에도 이발사가 알부자 직종으로 손꼽힌다.[10] 물론 이 당시의 두발자유화도 말이 두발자유화이지, 실제로는 스포츠 머리를 허용한 것으로 생색내거나, 상고머리를 규정으로 삼는 경우가 많았지만, 반삭에 비하면 길게 기르는 것은 마찬가지였기에 이발소에 큰 타격이었다.[11] 말이 좋아 미학이지 그냥 자기 기준으로 멋있게 보이는 컷만 고집했다. 근데 그게 남의 눈, 특히 손님의 마음에는 들지 않아서 그렇지...[12] 한중일과 대만, 북한 가릴거없이 알부자 직종으로 손꼽혔던 이유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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